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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들의 일과 삶,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위로공단>
입력 2015-09-01 |

 

영화를 보고 나온 순간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뭐라도 쓰지 않고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단 컴퓨터를 켰다

 

“<위로공단> 봤어요? 영화 참 좋아요. 이런 영화를 많이 봐야 하는데.”

비슷한 말을 두어 번 들었다. <위로공단>을 보고 싶어 하던 나였지만 그 말에는 대충 얼버무렸다. 공단에서 직접 일한 경험도, 공단에서 일한 엄마나 이모나 친구도 없을 사람의 그런 말이 어쩐지 달갑지 않았다. 

 

까지 썼다가 멈췄다. 내게 그렇게 말한 그녀들, 나와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을지언정 여성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녀들도 일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었을 텐데, 내 멋대로 고통과 공감을 얕잡아본 게 부끄러워진 게다.

 

엄마, 기억나? 집에 내려왔다가 나는 다시 학교로 엄마는 언제나처럼 일터로 가기 위해 함께 나왔던 어느 겨울날. 버스 뒷좌석에 엄마와 나란히 앉았을 때, 엄마는 문득 내 손을 잡으며 말했지. “숙녀의 손이 이렇게 거칠어서 어쩌나.” 아르바이트가 일상이 되어버린 대학생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묻은 엄마의 그 말. 엄마 손이 더 거친데 뭐, 이런 거친 손이 진짜 아름다운 손이지 뭐 하며 우린 미소와 농담을 주고받았지. 그러고는 괜히 말없이 창밖을 보는데 겨울 오전의 햇살이 참 환했어. 그땐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가끔 그 순간이 떠오를 때면 왜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까.

 

까지 쓰다가 또 멈칫. 영화를 보며 떠오른 순간이긴 했지만, 나와 엄마가 영화 속 그녀들과 겹쳐졌지만, 이렇게 계속 쓸 수는 없겠다 싶었다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영화제가 아니라 미술전이다)에서 일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한 시적 다큐멘터리라는 평과 함께 은사자상을 수상한 <위로공단>. 미술작가이기도 한 임흥순 감독은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인터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냈다.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로공단, 동일방직, 기륭전자, 삼성 반도체, 대형마트, 한진중공업, 항공사, 콜센터 등의 여성 노동자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그뿐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한국 의류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담겨 영화 속 문제가 그저 한 나라의 지나간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주고 있다 

1978년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똥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당시 사진을 찍어주었던 근처 사진관 아저씨는 현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인간 이하의 짓을 했구나, 싶었단다.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다고 구호를 적었던 열일곱 살 소녀, 나이키를 만들지만 월급으로 나이키를 사 신을 수 없는 현실. 다 같이 회식할 때도 파견직과 비정규직은 백세주를 못 먹게 했다. 바로 옆에서 정규직은 백세주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겉으로 깨끗한 대형마트엔 직원 휴식 공간이 없어서 박스를 깔고 앉아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2014년 캄보디아에선 최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 노동자들의 시위를 군부대가 진압하며 많은 사상자를 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여성노동잔혹사. KTX승무원 사태나 식당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나올 줄 알았는데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어쨌든 참 치사하고 추한 인간이고 또 사회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성실히 일한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말을 언급하며 한 여성 노동자는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가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그랬다. 그녀들은, 그리고 나는, 우리들은 성실한 노동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성실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은 어떨까? 하루 8시간도 모자라서 12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사회.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섣불리 구호를 외치거나 계몽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진 않다. 그저 담담하게 지난 시대와 지금 시대의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뿐이다. 그 인터뷰 사이사이 영상, 이미지, 퍼포먼스가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때로 어떤 것엔 고개를 갸웃, 어떤 것은 가만히 보며 멍해지기도 했다. 손을 잡고 거닐던 두 소녀, 할머니가 된 두 여자의 다정한 모습엔 짠해지기도 했고 

김진숙 위원장의 담담한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한진중공업 부당 해고에 저항해 크레인 농성을 벌였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말한단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느냐고. 그녀가 내 삶에서 내 선택은 없었다고 말하는데 아, 기어이 눈물이 났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듯이 이게 내 삶이었다고. ‘내 삶에 후회는 없어요.’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영화 막바지, 사람들 앞에 선 120다산콜센터 노동자의 모습은 아마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릴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손은 마구 떨리고 있다. 떨리는 손을 어쩌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어쩌지 못한 채 자기 목소리를 꿋꿋이 내려 애쓴다. 앞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찍었던 사진사는 사진 찍으며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만 그때 그 여성 노동자들처럼 그렇게 맑은 얼굴은 지금까지도 마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싸우면서도 적과 닮지 않고 순한 얼굴을 지녔던 그녀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겹쳐지며 쏟아지는 가운데 툭, 그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난 지금도 당당하단 말이 솟구쳐 귓속에 박힌다. 투사라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담겼구나, 그래서 내게도 위로공단이구나 싶었다 

찾아보니 서울시가 120다산콜센터의 야간주말 상담을 축소하고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단다. 다행이다. 잘 지키나 잘 지켜봐야지. 성실한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비합리적인 구조와 비인간적인 제도가 사라질 수 있도록 눈 비비고 다시 똑바로 봐야겠다. 영화가 끝나도 노동자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 봄날의소(bomso@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사진=반달 BANDAL Doc,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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